핀란드, 중국, 말레이시아 비영어권 3개국 집중취재
우리나라는 사교육과 해외연수, 유학 등으로 연간 2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을 영어 교육에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2004∼2005년 한국 토플(TOEFL) 응시생의 평균 성적은 세계 212개국 중 91위, 아시아 32개국 중 16위로 중위권을 맴돈다. 반면 핀란드, 덴마크, 터키 등은 영어 공교육 시간이 우리보다 특별히 많지 않고, 사설 영어교육을 거의 받지 않는데도 영어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우리보다 경제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중국, 말레이시아도 영어교육을 강화해 영어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영어교육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냈을까? 이들 나라의 영어교육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핀란드 영어교육의 또 하나의 강점은 우수한 교사 이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는 최근 ‘핀란드의 국가적 성공을 이끈 최고의 비밀 병기는 잘 훈련된 선생님들’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자일리톨과 산타클로스, 사우나의 나라인 핀란드는 북유럽의 소국이다. 인구도 52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2004년 기준으로 1인당 GDP는 3만5669달러로 전형적인 선진국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세계 경쟁력 평가에서는 늘 수위를 다툰다. 핀란드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공용어로 같이 쓴다. 영어는 공용어는 아니나 상용어로 일상화되어 쓰인다. TV 프로그램 절반이 영어이며, 외국 영화를 원어로 방영한다. 국민의 77%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IMD는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나라 중 영어소통이 가장 뛰어난 나라로 핀란드를 꼽고 있다. 수도 헬싱키에선 길거리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 초등학생부터 중년 신사에 이르기까지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길을 물었을 때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랫동안 러시아 지배 아래 놓여 있던 핀란드는 해방된 이후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러시아, 스웨덴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핀란드가 독립을 지켜나가며 살 수 있는 길은 교육을 통한 우수한 인적자원 양성뿐 이라는 결론이었다.
특히 영어는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로 생각했다. 하지만 1960년대만 해도 핀란드는 문법과 독해 중심의 교육을 했다. 영어교육 노하우가 아직 축적되지 않은 탓이었다. 양질의 영어교사와 교재도 부족했다. 게다가 핀란드어는 한국어와 비슷한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해 영어와는 문장구조가 달라 배우기도 쉽지 않았다(핀란드어는 유럽연합(EU) 국가 언어 중 영어와 가장 ‘촌수’가 먼 언어로 꼽힌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20년 전만 해도 핀란드 국민들은 영어를 지금처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했다. 영어 실력이 금방 향상되지 않았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특히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영어교육이 문제가 됐다.
1980년대 들어서 핀란드는 영어를 정규 과목으로 편성하고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영어가 비즈니스와 외교에 필수라는 공감 아래 영어교육과 교사 재교육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 것 이다. 국민들은 이런 점을 강조하는 정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핀란드는 또한 이때부터 영어교육의 강조점을 회화로 옮겨갔다.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민간 핀란드인들이 모국과의 교류를 확대한 것도 핀란드인들이 영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핀란드가 영어를 잘하게 된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학교에서 잘 가르치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는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이중언어 교육(핀란드어와 스웨덴어)을 실시하고, 초등 3학년부터 영어 중심으로 외국어 교육을 실시한다. 영어는 초등 3학년부터 일주일에 두 시간씩 가르친다.
초등 3~4학년의 경우, 수업의 시작은 간단한 인사말과 서로의 이름과 나이를 묻는 식으로 이뤄진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이름이나 취미 등을 물어보며 입을 틔운다. 그러고 나서는 교사가 활동 지시를 하면 학생들이 그 지시에 따라 온몸을 움직인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는 ‘전신반응교수법(Total Physical Response)’이다. 핀란드에서는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등 영어의 네 기능을 처음부터 균형 있게 가르친다. 특히 단어 습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초기 단계에서부터 영어의 네 기능을 고루 익히도록 하고, 자신의 말로 영어를 연습할 기회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 3, 4학년의 영어 수업에서는 교사가 핀란드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한다.
5, 6학년 수업은 3, 4학년 수업과 마찬가지로 교사와 학생이 실질적인 의사소통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학생들이 영어 문법을 익히는 활동을 한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오래된 방식으로 치부하는 번역과 해석 활동도 한다.
중학교에 진학하면 수학, 과학, 미술 등 다른 과목도 영어로 배우기 시작 한다. 이른바 CLIL(Content and Language Integrated Learning)이라고 불리는 ‘내용-언어 통합학습법’이다. 한마디로 크릴은 교육과정을 통합해 외국어로 가르치는 학습법이다. 예를 들어 사회·과학·국어 교과서에서 공해문제를 주제로 뽑아 영어로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은 영어로 발표하고, 영어 보고서를 쓰는 과정을 통해 자기주도적 학습력과 사고력이 눈에 띄게 발달하고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이 향상된다.
핀란드인 스스로가 밝히는 영어 성공 ‘비법’은 영어방송 이다.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방송을 많이 듣고 자라 영어에 익숙해져 있다. 핀란드는 영어로 된 TV 프로그램을 핀란드어 자막만 넣은 채 영어 그대로 방송한다. 어떤 채널은 영어 만화방송을 자막도 없이 하루 종일 내보낸다.
핀란드에는 지상파 방송채널이 MTV3, YLE1, YLE2, Nelonen 네 개가 있고, 기타 케이블과 위성방송이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절반이 영어이며, 외국 영화를 원어로 방영하고, 자국어로 자막 처리한다. 지상파 TV 프로그램 중 북미지역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은 MTV3가 30%, Nelonen이 48%, YLE2, YLE1이 각각 12%, 10%를 차지한다. 핀란드 이외 유럽지역에서 제작되는 프로그램도 영어로 제작된 것들이 많다. 대체로 영어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영어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영어 TV를 보며 공부하라고 지시한다.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영어에 익숙해진다. 영어교육을 위해 제작된 교육방송이 아니라 일반 드라마와 영화를 영어로 즐기면서 자기도 모르게 영어 학습이 된다. 일부 핀란드 어린이들은 모국어를 배우기 전부터 영어로 된 TV 드라마나 영화를 핀란드어 더빙 없이 시청하기도 한다. 핀란드에서 대학을 갈 때는 모두 6과목의 시험을 치른다. 핀란드어·스웨덴어·영어·선택 외국어·수학·제너럴(General). 영어 시험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실시된다. 쓰기와 듣기. 쓰기 영역은 읽기 선택형 25문항, 읽기 주관식 5문항, 문법 및 단어 주관식 10문항, 그리고 영어 에세이 4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듣기 문항은 선택형 30문항과 주관식 5문항이다. 쓰기 시험시간은 6시간에 이른다. 핀란드의 이런 시험 정책 아래에서는 누구나 영어 쓰기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습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핀란드 영어교육의 또 하나의 강점은 우수한 교사이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는 최근 ‘핀란드의 국가적 성공을 이끈 최고의 비밀 병기는 잘 훈련된 선생님들’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핀란드에서 영어교사가 되려면 1년간의 교사연수 과정을 포함한 총 5년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핀란드는 198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우수한 영어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해 오고 있다. 그 결과 석사학위를 가진 영어교사가 대부분이다. 핀란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는 석사학위 취득자들이고, 고등학교 교사들은 박사학위 취득자가 대부분이다.
이런 양질의 영어교사들은 영어로 수업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아이들은 초·중·고 기간 내내 영어로 영어 과목을 배운다.
따라서 학생들은 굳이 학교 밖에서 영어를 따로 배울 필요성을 못 느낀다. 실제로 핀란드 학생들은 오후 3시만 되면 모든 교육이 끝이 난다. 학원도 가지 않는다. 그 이후는 모두 취미생활을 한다. 그 대신 교사들에 대한 보상은 확실히 한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변호사·의사와 같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 공무원 중에서 교사들의 급여가 가장 높다.
Wednesday, June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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