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부 만큼이나 말하기 공부를 시작하자.
작성자 : 신동일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등록일 :2008.04.18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이 있다. 첫 시간에 재미난 얘기도 하면서 서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대부분 학생들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곤 한다.
“I am sorry" “My English is poor” “My grammar is not good." “But I want to speak English fluently” “I want to speak English like a native”
원어민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영어가 부족하다고 고백하는 학생들은 늘 있다. “영어를 잘 못하고요...,‘ ’문법이 약하구요...‘ ’영어공부를 열심히 더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구요..‘ ’발음이 좋지 않아서 미안하구요...‘ ’...그래서 유창하게 하고 싶어요. 원어민처럼요.” 자꾸 미안하다고 말하고 자신은 한참은 더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원어민과 비교한다. 비교의 기준은 대개 발음, 문법, 어휘, 표현이다.
한 번은 태희라는 학생이 연구실로 찾아 왔다. 언제나 명랑하고 적극적인 학생인데 그 날은 꽤 심각한 얼굴이었다. 태희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녔고, 중, 고등학교 때도 영어를 제일 좋아했고 그래서 영문과로 지원한 학생이다. 그런데 대학교에 오니 영어말하기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말하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영어 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었는데 말하기는 쉽게 늘지도 않는다고 했다. 태희의 소원은 사람들 앞에서 원어민이나 재미교포처럼 폼나게 영어를 말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원어민처럼” 이란 말을 정말 자주 듣는다. 그리고 원어민처럼 영어를 말하고 싶은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저 멋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태희는 대학에서 회화수업에 처음 들어갔다가 주위 친구가 자신보다 더 멋진 발음과 세련된 어휘사용으로 원어민 선생님과 얘기하는 것을 보고 의기소침해졌다. 시기심도 생겼다. 그래서 자신도 더 유창한 발음으로 원어민들과 멋지게 말하고 싶다고 고민한다.
예전에 네티즌들이 김대중 전대통령이나 히딩크 전국가대표 축구감독의 영어를 비아냥댄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발음이 좋지 않고 너무 비원어민 티가 나는 세련되지 못한 영어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영어 잘하고 못한다는 평가엔 분명 원어민 기준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영어 가르쳐주는 방송에서도 발음과 표현 얘기 참 자주 한다. 영어회화 강좌를 보면 원어민이 등장하며 어휘나 구문 표현에 관한 설명을 너무 많이 한다.
이걸 기억하자. 원어민다움(nativeness)에 집착하면 비원어민은 언제나 열등할 수 밖에 없다. 원어민이란 기준은 비원어민의 영어 말하기공부를 곤고하게 만든다. 왠만해선 진척이 없어 보인다. 물론 원어민의 기준도 애매할 때가 많다. 원어민 기준점은 영어말하기 공부에서 무지개와 같은 것이다. 화려하게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다.
지금 어디서 무슨 영어말하기 공부를 하고 있는가? 전화영어도 좋다. 영어회화 학원도 좋다. 영어마을도 좋다. 대화도 좋고 스토리텔링도 좋고 발표와 토론도 좋다. 그런데 혹시 지금 배우고 있는 영어가 무지개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엄격한 발음, 문법, 표현을 요구하는 원어민 영어가 아닌지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영어이기 전에 말하기에 대해 배워야 한다. 말을 걸고 싶은 사람, 말을 주고 받고 싶은 사람은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의사소통기술이 있는 사람이다. 진실성이나 구성력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영어가 부족하고, 연습이 더 필요하고, 아직 공부를 더 해야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내 학생들은 사실 거뜬히 영어문장을 나열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해낼 수 있는 중급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영어 잘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영어를 너무 엄격하게 비교한 탓에 주눅이 들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 보자. 정확한 영어, 원어민 영어의 짐은 잠시 내려두자. 그리고 이런 연습부터 해보자. 눈을 맞추고 말하는 연습을 하자. 표정을 밝게 하고 웃으면서 말하는 연습을 하자. 말하고 싶은 내용이 길어지면 내용을 요약하면서 시작해보자. 복잡한 구문은 사용하지 말고, 짧고 간결하게 문장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면서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하자. 자신의 감정을 반영하는 음의 높이, 다양한 얼굴표정이나 몸짓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말문이 막히면 한국어 단어도 사용하자. 주변에 보이는 것을 손짓으로 가르키며 말하자. 상대방이 지루하는 듯하면 질문을 던지며 한 호흡 쉬어가며 상황을 살핀다. 상대방의 참여를 최대한 활용하자. 평소에 상대방이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 소재를 항상 수첩에 적어두고서 수시로 말하는 연습을 해보자.
어떤가? 발음과 어휘실력이 원어민 수준이 아니라도 이런 건 당장에 연습할 수 있다. 이런 것만 반복적으로 연습하더라도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는 능숙함과 자연스러움을 배울 수 있다.발음과 어휘실력을 당장에 변화시킬 수 있는가? 열심히 하면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일찌감치 원어민 되기를 포기하고 발음과 어휘 등의 엄격한 기준도 우리 스스로 좀 더 관대해지자. 그리고 영어공부 만큼이나 말하기 공부를 시작하자. 말하기 공부는 모국어로도, 일상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말하기기술이 향상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의사소통기술을 배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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